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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형청죄 유래는?

사마천의 사기 염파인상여열전에서 나오는 조나라의 명재상 인상여와 대장군 염파의 이야기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부형청죄 뜻은?

가시나무를 짊어지고 용서를 청하러 간다는 뜻으로 상대방에게 자신의 잘못을 사죄하며 엄하게 벌하여 달라는 의미입니다.



화씨벽 사건 이후 기원전 279년 조나라의 혜문왕은 인상여를 상대부라는 높은 벼슬을 부여합니다. 이는 진나라의 소양왕과 혜문왕의 회동자리에서 인상여가 기지를 발휘하여 혜문왕이 굴욕을 당하지 않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회동자리에서 있었던 일화는 이러합니다. 술을 마시며 분위기가 무르익자 소양왕은 평소 음악에 조예가 깊은 혜문왕에게 슬(거문고)을 연주해 줄 것을 청합니다. 마지못해 연주를 시작한 그 때 옆에 있던 신하가 이야기하길 진나라 왕은 조나라 왕과 술자리를 하며, 조나라 왕에게 명하여 슬로 한 곡조를 연주하게 했다라고 읊조리죠. 이 소리를 들은 혜문왕은 한 나라의 왕인 자신을 마치 신화와도 같이 대하는 모습을 보며 몹시 화가 났으나 혹여나 전쟁의 구실이 될까 꾹 참고 있었습니다.



이 모습을 보고 있던 인상여는 바닥에 놓여져 있던 북처럼 채로 두드려서 소리를 내는 악기인 부를 들고 소양왕에게도 한 곡조 청하였는데, 이를 못들은 척 넘어갈려고 하자 부를 두드리지 않으면 자신의 목의 피가 튀게 될지도 모른다며 단호하게 말하였습니다. 결국 부를 두드리는 순간 인상여는 조나라의 신하에게 큰 소리로 진나라 왕이 조나라 왕을 위해 도기 부를 연주하였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게 아무리 무리한 요구를 하여도 현명하게 대처한 인상여는 결국 그 공이 인정되어 상대부에 올라가게 된 것 입니다.



그런데 이 것을 곱게 보지 않은 이가 있었으니, 바로 대장군 염파 입니다. 염파는 목숨을 걸고 전쟁터를 누빈 자신보다도 말 몇 마디로 상대부라는 벼슬에 올라간 인상여를 시기하였습니다. 너무나 치욕스러운 일이라며 앞으로 인상여를 만나게 되면 망신을 주겠다며 벼르고 있었죠. 하지만 이 말을 전해들은 인상여는 염파가 보이면 옆길로 숨고, 몸이 아프다는 핑계를 대면서 까지 그를 만나는 것을 피해왔는데 이 모습을 본 그의 가신들은 어찌하여 자기보다 낮은 벼슬의 염파를 이렇게 두려워하냐고 묻습니다.


그에 인상여가 염파 장군과 진나라 왕 중에서 누가 무서운지를 되묻습니다. 그리고 본인은 진나라의 왕 앞에서도 큰소리를 쳤는데, 하물며 염파 장군을 무서워하겠냐고 하죠. 다만, 지금 정세상 진나라가 조나라를 쳐들어오지 못하는 것은 염파 장군과 본인이 있기 때문인데 이 시기에 이 둘이 서로 싸움이라도 나게 되면 그 틈을 타서 진나라가 쳐들어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냐고 말합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염파 장군은 자기 자신을 낮추고 나라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인상여의 모습을 보고 사과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렇게 웃통을 벗고 맨 등에 가시나무 채 한 단을 진채로 인상여의 집 앞으로 가 무릎을 꿇습니다. 깊은 뜻을 미처 몰랐던 본인의 어리석음을 꾸짖어 달라며 청하는데 이 일화에서 부형청죄라는 고사성어가 나오게 됩니다. 이 후 둘은 목을 내어줄 정도로 깊은 사이가 되었는데 이 것이 바로 문경지교 라고 말하죠.


부형청죄 뜻과 부형청죄 유래 외에도 더 깊숙히 들어가게 되면 연관된 다른 고사성어들도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문경지교가 그 중에 하나이죠. 부형청죄는 어떻게 활용하여 이야기 하는지 아래의 뉴스를 참고하시면 더욱 이해하기 쉽습니다.



본인의 실수가 있었다면 부형청죄의 마음으로 사죄하는 것이 도리겠지요. 혼란한 시대에 인상여와 염파처럼 사사로운 감정과 앙금을 털어내고 나라를 중히 여기는 마음이 앞선다면 한 나라의 지속적인 발전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 합니다.


인상여와 관련된 또 다른 고사성어는? 

문경지교에 얽힌 유래는 무엇일까?

완벽귀조는 무슨 뜻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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